축성 당시의 후쿠야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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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나 8년(1622년) 8월 미즈노 가쓰나리가 입성한 후쿠야마성은 혼마루를 중심으로 니노마루와 산노마루가 둘러싼 윤곽식 구조로, 이중 해자를 갖춘 일본 굴지의 거대한 성입니다. 북쪽의 고마루산과 바깥 해자까지 포함하면 부지 면적은 약 78,000평이나 됩니다. 바깥 해자의 총 둘레가 1,191칸(약 2,156미터)이나 되는 광대한 면적을 자랑하며, 그 부지 내에 7채의 삼층 망루(야구라)를 포함해 총 22채의 망루가 줄지어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혼마루 안에는 가쓰나리가 주거로 삼았던 혼마루고텐과 목욕시설인 오유도노가 있으며, 니노마루 북쪽에는 막부의 명을 받아 쌀을 보관하거나 연공미를 넣어두는 오천석 창고가 나란히 들어서 있습니다. 게다가 산노마루에는 니노마루를 둘러싸는 형태로 가신들의 집을 배치했고, 동쪽에는 2대 번주 가쓰토시 이후 역대 번주들이 주거로 삼았다고 전해지는 번주 저택이 세워졌습니다.
일국일성령(도쿠가와 막부가 1615년 모든 지방영주에게 영내 거성 이외의 모든 성을 폐하도록 명령한 법령)이 발포된 시대에 허가된 이례적인 축성으로, 일본 최후의 본격적인 근세 성곽 건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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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시미야구라 망루(국정중요문화재)
축성 때 후시미성에서 가져와 세운 망루 건물 중 하나입니다. 1951년(쇼와 26년)부터 실시된 수리 때 2층 들보에서 ‘마쓰노 마루노 히가시야쿠라‘라는 글이 발견되어 후시미성에서 가져와 세웠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습니다. 후시미성에서 이축된 것으로 전해지는 사례는 여럿 있지만 이 건물은 문헌이나 글로 입증된 일본 유일의 현존 건축물입니다. 일본 성곽사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고 귀중한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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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야마성 역대 성주
미즈노 가문 5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종형제 미즈노 가쓰나리가 겐나 5년(1619년) 후쿠야마에 입성하면서 후쿠야마번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가 시작한 간척 공사와 성하도시 정비 등과 같은 도시조성 사업을 이후의 번주들 또한 계속 이어가면서 후쿠야마는 발전해 나갑니다. 그러나 가쓰미네가 어린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미즈노 가문은 후계자를 세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가쓰나리의 증손자가 뒤를 잇는 것이 허락되기는 했지만 미즈노 가문의 영지는 줄어들었고, 결국은 다른 영지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마쓰다이라 가문 1대
통칭 오쿠다이라 마쓰다이라. 개조 오쿠다이라 다다아키가 이에야스의 양자가 되면서 “마쓰다이라“라는 성을 하사받았습니다. 겐로쿠 13년(1700년) 오쿠다이라 마쓰다이라 가문 3대 다다마사의 영지가 야마가타에서 후쿠야마로 변경되었지만, 그의 치세는 불과 10년으로 끝났습니다.
아베 가문 10대
개조 아베 마사카쓰는 어릴 적부터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겼으며, 미즈노 가문 및 마쓰다이라 가문과 마찬가지로 대대로 이에야스를 섬기는 가문이었습니다. 역대 후쿠야마번 아베 가문 사람들은 소샤반, 교토 쇼시다이, 지샤부교 그리고 로주 등과 같은 막부 요직에 연달아 취임함으로써 막부 정치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특히 미일화친조약을 체결한 마사히로는 후세의 일본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