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를 대대로 섬긴 명문 “아베 가문”
역대 당주와 아베 마사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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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가문과 아베 가문의 깊은 관계
아베 가문의 개조 마사카쓰는 덴분 16년(1547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함께 이마가와 가문으로 보내져 측근으로서 그리고 친구로서 인질 생활을 했던 이에야스를 보좌했습니다. 그의 장남 마사쓰구도 세키가하라 전투와 오사카 전투에 참전했으며, 특히 오사카 겨울 전투 뒤에는 도요토미 가문과의 종전 교섭에 임했습니다. 그리고 시게쓰구는 3대 쇼군 이에미쓰가 젊었을 때부터 시중으로서 그를 섬긴 뒤 분가인 아베 다다아키와 함께 로주에 취임했고, 이에미쓰가 병으로 사망하자 시게쓰구 또한 주군을 따라 순사했습니다.
이처럼 아베 가문은 도쿠가와 가문을 초창기부터 섬겨 온 가문으로서 그 중책을 맡아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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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막부의 중추에 있었던 후쿠야마번 아베 가문
호에이 7년(1710년) 마사쿠니가 후쿠야마번 아베 가문 초대 번주로 입성하고, 마사요시가 오사카를 지키는 오사카조다이에 취임함으로써 가문의 영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마사스케는 에도 성내의 의식을 주관하는 소샤반, 전국의 절과 신사를 관리하는 지샤부교, 조정과 서쪽 지방 영주들을 감시하는 교토 쇼시다이, 막부의 중추기관인 로주에 취임했습니다. 마사토모와 마사키요도 그 뒤를 이었습니다. 나아가 마사히로는 단 한 사람만 될 수 있는 로주슈자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막부 말기에는 동란의 조짐이 보이는 교토에서 마사카타가 그 방위를 맡는 등 언제나 막부 정치를 뒤에서 떠받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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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막부 말기, 근대 일본의 초석을 세우다
가에이 6년(1853년)의 흑선 내항과 미일화친조약 체결 등과 같은 외교문제에 대해 막부를 움직이게 한 사람이 아베 마사히로였습니다. 덴포 15년(1844년) 26세의 나이로 로주슈자로 발탁된 젊은 지도자였지만, 열강의 식민지 정책 등으로 인해 일본을 둘러싼 정세는 결코 평안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적극적으로 여러 외국의 정보를 모아 신판, 후다이, 도자마 등의 구분 없는 연계를 통해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인재를 등용했습니다. 또한 에도(지금의 도쿄)와 후쿠야마에 번교 세이시칸을 설립해 실력에 따라 사람을 발탁하는 등 인재 육성에 진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