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야마 번주에 대하여

번주 미즈노 가문, 번주 마쓰다이라 가문, 번주 아베 가문

후쿠야마번 미즈노 가문 초대 번주 미즈노 가쓰나리

번주 재임 기간

1619년(겐나 5년)~1639년(간에이 16년)

생몰년

1564년(에이로쿠 7년)~1651년(게이안 4년)

1564년(에이로쿠 7년) 미카와국(지금의 아이치현)에서 태어났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모친 오다이와 가쓰나리의 부친 다다시게는 남매 관계이므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는 사촌 관계가 된다.
1579년(덴쇼 7년) 엔슈 다카텐진성 공격으로 첫 출진을 장식하게 되나 1584년(덴쇼 12년) 고마키·나가쿠테 전투에서 부친의 노염을 사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니게 된다. 그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 삿사 나리마사, 고니시 유키나가, 가토 기요마사, 구로다 나가마사 등을 섬기며 계속해서 빈고, 빈추를 유랑한다.
1599년(게이초 4년) 이에야스의 중개로 부친 다다시게와 화해하고 귀성한다. 그러나 1600년(게이초 5년)에 부친 다다시게가 암살되자 37세에 부친이 남긴 영지 가리야 3만석을 계승하고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오가키성을 공략하며 공을 세운다. 1610년(게이초 15년) 종5위하 휴가노카미(관직명)에 임명되며 이어서 1615년(겐나 원년) 오사카 여름 전투에서는 고토 모토쓰구(고토 마타베에)와 싸워 승리하는 등 맹장으로서 활약을 떨치자 그 공적을 기려 야마토국의 고리야마에 6만석으로 이봉된다. 후쿠시마 마사노리의 관직 박탈 후, 1619년(겐나 5년)에 4만석이 가증된 빈고 10만석으로 이봉되는데 여기서부터 후쿠야마번의 역사가 시작된다.
후쿠야마에 입성한 후는 후쿠야마성 축성과 함께 바다를 매립하여 마을의 건설에 매진하게 된다. 1622년(겐나 8년)에 후쿠야마성은 완성되지만, 가쓰나리의 위업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간척, 개척, 치수 사업을 벌이며 나아가 그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전국에 앞장서서 번찰을 발행하고 신사와 사찰 수리와 재건에까지 이른다.
1638년(간에이 15년) 74세의 노구의 몸으로 시마바라의 난에 출진, 진압 후 1639년(간에이 16년) 적자 가쓰토시에게 번주의 자리를 물려주고 가쓰나리는 자신의 은거료로 마을 개간에 착수한다. 1651년(게이안 4년) 88세에 후쿠야마에서 사망하여 데라마치의 겐추지 절에 안장된다. 가쓰나리의 인생은 전국시대의 무장이던 전반, 번주였던 후반으로 나뉘며 특히 후쿠야마 입성 후는 후쿠야마의 초석을 쌓는 등의 그 후에 끼친 영향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그야말로 후쿠야마의 창건자라고 할 수 있다.

2대 번주 미즈노 가쓰토시

번주 재임 기간

1639년(간에이 16년)~1655년(메이레키 원년)

생몰년

1598년(게이초 3년)~1655년(메이레키 원년)

1619년(겐나 5년) 부친 가쓰나리의 후쿠야마 입성과 동시에 도모의 고성에 들어가 있던 탓에 “도모도노”로도 불린다. 그 후 1638년(간에이 15년) 시마바라의 난에 부친 가쓰나리와 적자 이오리(3대 가쓰사다)와 함께 출진하여 제일 먼저 공적을 세우고 다음 해 1639년(간에이 16년) 가계를 계승하였다. 가쓰토시의 정책은 부친 가쓰나리의 의지를 계승하는 형태로 간척, 개간 등 전적으로 영내 경영을 꼽을 수 있다. 농업용 저수지인 가스가 연못과 추후 목면교로도 불리게 되는 새 다리의 건축은 가쓰토시의 위업으로 꼽을 수 있다.

3대 번주 미즈노 가쓰사다

번주 재임 기간

1655년(메이레키 원년)~1662년(간분 2년)

생몰년

1625년(간에이 2년)~1662년(간분 2년)

1638년(간에이 15년) 시마바라의 난에 조부 가쓰나리와 부친 가쓰토시와 함께 14세의 나이로 출진한다. 1639년(간에이 16년)에 부친 가쓰토시가 가계를 계승하자 적자로서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를 알현, 1640년(간에이 17년)에 종5위하 비젠노카미(관직명)에 임명된다. 1655년(메이레키 원년) 후쿠야마번 미즈노 가문 3대 번주로 책봉되고 같은 해 휴가노카미에 임명되는 등 그 후에도 에도와 후쿠야마 간을 오가며 치세에 힘썼으나 1662년(간분 2년) 38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한다.

4 대 번주 미즈노 가쓰타네

번주 재임 기간

1663년(간분 3년)~1697년(겐로쿠 10년)

생몰년

1661년(간분 원년)~1697년(겐로쿠 10년)

1662년(간분 2년) 부친 가쓰사다의 죽음으로 다음 해 1663년(간분 3년)에 가계를 계승한다. 1679년(엔포 7년)에 귀국하면서 같은 해 처음으로 후쿠야마에 입성하게 되나, 1688년(겐로쿠 원년) 니시마루 복원 공사 도우미, 1689년(겐로쿠 2년) 에도성의 오쿠즈메(관직명) 등 막부 정치에서도 활약을 펼쳐 1697년(겐로쿠 10년) 쓰야마성을 하사받게 되나, 그 출발 직전 37세의 나이에 병으로 급사한다.

5대 번주 미즈노 가쓰미네

번주 재임 기간

1697년(겐로쿠 10년)~1698년(겐로쿠 11년)

생몰년

1697년(겐로쿠 10년)~1698년(겐로쿠 11년)

1697년(겐로쿠 10년) 후쿠야마에서 태어나 같은 해 가쓰타네의 급사로 불과 1살의 나이에 가계를 계승한다. 1698년(겐로쿠 11년) 상경을 위해 후쿠야마를 출발하나 도중 병에 걸려 같은 해 에도에서 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사망한다.
 번주 부재라는 소위 가문의 대가 끊긴 후쿠야마번은 무가제법도에 따라 제명되어 미즈노 가문 및 가신들은 후쿠야마에서 퇴거한다. 그러나 도쿠가와 가문에 공이 있는 미즈노 가문은 결국 가쓰나리의 증손(가쓰토시의 동생인 가쓰타다의 손자) 가쓰나가가 미즈노 가문을 계승하게 되나, 주어진 영지는 불과 1만석의 후쿠야마에서 멀리 떨어진 노토국(지금의 이시카와현)이었다. 그 후 유키번으로 이봉되어 현재까지 이어진다.